7박 9일의 체코 여행 첫날은 체코가 아닌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했다.
집을 떠나 약 22시간만에 호텔에 도착한 피로 때문에 여유있게 휴식을 취하려고 하였지만, 예상대로 시차 때문에 새벽 4시경에 눈이 떠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프라하에는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에는 오늘은 오전에 계속 비가 오고, 기온도 10도 이하로 쌀쌀했다.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정류장까지 20분을 걸어 독일로 가는 2층 버스를 타고 작센주의 드레스덴으로 향했다.



프라하를 출발한 베를린행 버스는 약 2시간을 달려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체코와 독일의 국경을 넘으면서 통신회사도 자동으로 독일회사로 바뀌었는데, 북한으로 인해 사실상 섬나라인 우리나라에 살다보니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경험은 언제나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드레스덴은 독일 작센 주의 주도로, 도시 곳곳에 있던 바로코양식의 건축물들로 인해 엘베강의 피렌체로 불린다. 2차 대전 종전 직전 폭격으로 거의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으나 동독 시절에는 제대로 재건이 되지 않다가 독일 통일 후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드레스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서 13세기에 형성된 드레스덴 구시가지의 중심 광장인 알트 마트크트 광장으로 향했다. 알트 마트크트 광장은 수확 축제가 열려 공연을 위한 무대와 소규모 놀이기구 그리고 각종 푸드트럭 등으로 인해 복잡했다.


광장을 떠나 프라우엔 교회로 갔는데 프라우엔 교회란 ‘성모교회’라는 의미의 루터교회로 종교개혁 이후인 18세기 초 기존에 있던 주교좌 성당을 허물고 바로크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종 모양의 석조돔으로 약 200년간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프라우엔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동독 시기에는 교회 재건에 무관심하여 잔해를 그대로 두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전쟁의 비극을 알려주는 평화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으나, 독일 통일 후 200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각국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60년만에 재건되었다고 하는데, 프라우엔 교회 내부는 황금빛 제단이었으나 생각보다는 소박했다


프라우엔 루터교회 앞에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동상이 서 있다.
마르틴 루터가 1517. 10. 31. 비텐베르크성의 성당 문에 개시한 95개조의 반박문은 쿠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에 덕분에 순식간에 전 독일어권으로 전파되었다. 루터가 파문 당한 후 작센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보호를 받았는데, 루터의 동상이 서 있는 드레스덴이 작센주의 주도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프라하에서 그 유적을 살펴보려고 하는 얀 후스의 사상이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루터는 스스로 “알든 모르든 우리는 모두 후스파”라고 하여 자신의 주장이 얀 후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1415년 얀 후스가 화형 당하면서 “너희는 지금 거위 한 마리를 불태워 죽이지만 100년 후에는 태울 수 없고, 삶을 수도 없는 백조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얀 후스 사후 102년만에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드레스덴을 방문하면서 이번 여행에서 만나고 싶었던 얀 후스보다 그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을 성공시킨 루터를 먼저 만나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묵상할 수 있었다.

프라우엔 교회 다음으로 방문한 브륄의 테라스는 1737년 브륄 백작이 엘베강가를 따라 도시를 지키던 성벽을 정원으로 만든 곳으로 괴테가 유럽의 발코니라고 칭찬하였으나 엘베강을 따라 곳곳에 서 있는 동상들을 제외하고는 그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브륄의 테라스를 따라가면 드레스덴 궁정교회로 불리는 드레스덴 대성당이 나오는데, 이 건물 역시 2차 대전 때 파괴된 것을 다시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드레스덴 대성당은 18세기 프라우엔 교회가 건축되는 등 루터교가 성장하고 카톨릭이 힘을 잃어가는 작센공국을 다시 카톨릭화 하기 위하여 아우구스트 2세가 건축한 성당으로 바로코 양식의 이 성당 높이는 83미터에 달하고 성당 난간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등 78개의 동상이 있고, 왕궁교회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레지덴츠 궁과 다리로 이어져 있다.
드레스덴 성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레지덴츠 궁전은 16세기부터 약 400년간 작센 공국의 선제후가 사용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레지덴츠 궁전 옆 건물의 벽에 새겨진 군주의 행렬은 1127년부터 1904년까지 작센지방의 군주 35명과 과학자, 농부, 어린이 등 59명 등 총 94명의 사람들이 행진하는 모습을 도자기 타일을 붙여 만든 벽화로 길이는 102미터에 이르며 2차 세계대전의 폭격에도 살아남은 드레스덴의 산역사이다.
군주의 행렬은 처음에는 왕실 마굿간이었던 슈탈호프 외벽의 벽화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소실이 되자 당시 최고의 미술가였던 빌헬름 발터가 1907년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2만 3천여개의 마이센 도자기를 붙여 만들어졌는데, 이 때문에 2차 대전의 폭격에도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드레스덴의 마지막 일정으로 츠빙거 궁전으로 갔다. 츠빙거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 영향을 받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왕에 의해 본래 성벽 외곽 대포를 설치했던 구역에 여름 별장으로 건축된 곳으로 독일 바로크의 대표적인 건축물이었으나 2차 대전시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1960년대에 재건되었다.
실내에는 역사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거장 박물관 등 5개의 박물관이 있으며 거장 박물관에는 라파엘로, 램브란트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실내는 패스했고, 아름답다는 정원은 공사 중이라 제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츠빙거 궁전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했으나 츠빙거 궁전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며 드레스덴 일정을 마무리했다.



프라하로 돌아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코젤로브나에서 타르타르와 굴라쉬 그리고 스비치코바에 코젤 맥주를 곁들어 저녁을 먹었는데 생각한 것보다는 괜찮은 맛이었다.

식당을 나와 식당 앞에 있는 까를교를 건너며 프라하의 야경을 보고 프라하의 중심인 구시가지 광장을 경유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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