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성지순례

쿰란, 사해, 여리고

유명상 2013. 8. 5. 21:30

이번 숙소도 홍해변이다.

바다 건너는 사우디아라비아다. 

모세가 출애굽 전 40년 간 하나님께 트레이닝을 받은 미디안 광야가 있는 땅.

 다시 오고 싶은 아름다운 홍해를 뒤로 하고 이스라엘에 입국했다.  

 


 

까다롭다고 소문난 이스라엘의 입국절차는 우리는 애들과 동행한 덕분에 엑스레이 검사도 없이 간단히 통과했다.

이스라엘로 들어와서 다시 바라본 홍해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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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이스라엘로 입국해서 가이드인 이정훈 목사님을 만나 다시 광야를 달린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닌 유대광야를 지난다.

 도중에 1세기 중반 이스라엘이 로마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벌인 맛사다 요새와 다윗의 도피처인 엔게디를 지났다.

그러자 큰 호수가 눈에 나타났다.

바로 성경에서만 보았고, 말로 들었던 사해다.

수면보다 400미터 아래에 있어 들어오는 물은 있으나,

증발을 제외하고는 빠져나가는 곳은 없어 어떤 생물도 살지 않는 곳.

그래서 성경에도 염해로 표현되어 있다.

 

사해 주변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소금기둥으로 알려진 곳도 있다.

롯의 아내 소금기둥 주위의 흙이나 돌도 맛을 보면 모두 짠 소금이다.

 

 

 

현재 사해는 들어오는 물보다 증발하는 물이 너무 많아 곳곳에 땅이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정부가 사해의 물을 보충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사해 수영.

수영을 못하더라도 염분의 농도로 인해 자연스럽게 물에 뜰 수 있는 사해의 특성을 잘 이용한 것 같다.

 

롯의 아내 소금 기둥 주위에서 주운 돌.

돌이 아니라 암염이었다.

이번 성지순례의 영원한 기념품이 될 것 같다.

 


쿰    란

 

사해를 지나 이스라엘의 쿰란 국립공원에 도착해서 먼저 점심식사를 하고, 쿰란을 둘러 보았다.

기원전부터 경건한 에세네파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모여서 생활한 곳이 쿰란이다.

에세네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들의 공동생활도 이스라엘이 로마에 멸망 당하면서 끝이 났다.

 그 때 이들은 필사한 성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항아리에 담아 부근 동굴 속에 보관했다.

 

이 성경 필사본들은 1940년대 중반 목동들이 이곳의 동굴에 숨는 양들을 찾는 과정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조사로 구약성경의 거의 전부가 발견되었다.

이 성경 사본은 흔히 쿰란사본 또는 사해사본이라고 불린다.

사해사본의 발견으로 성경의 역사는 1,000년 이상이나 소급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 쿰란의 경건한 유대인들이 2,00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쿰란의 정결의식을 위한 장소

 


여리고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먼저 정복한 여리고로 향했다.

여리고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권이 미치는 곳이어서 이스라엘의 정세가 불안하면 출입이 금지되는 곳인데,

우리는 아무런 문제 없이 방문할 수 있었다.

여리고에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올라갔다는 돌무화과나무와

엘리사가 소금을 넣어 물의 근원을 좋은 물로 바꾼 엘리사의 샘을 순례하고,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신 시험산을 멀리서 조망했다.

 

 

 

  

 

 

 

성경에 종려나무로 표현된 대추야자 나무이다.

대추야자는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에서 가장 흔히 맛볼 수 있는 과일인 것 같다.

호텔에서의 식사에는 빠짐 없이 나온 과일이다.

 

여리고는 세계에서 오래된 도시의 하나이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도시다.

수면보다도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해발 700미터 정도의 예루살렘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간다고 표현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예루살렘을 거쳐, 웨스트 뱅크 안에 있는 베들레헴의 인터컨티넌탈 호텔로 향했다.

우리 가족도 분리장벽 안 팔레스타인 차지구역에서 하루밤을 지냈다.

인터컨티넌탈 호텔은 베들레헴이 요르단 영토일 때 왕실의 별장으로 사용된 시설로 낡기는 했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