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그리스 로마 초대교회 성지순례

소아시아 성지순례-빌라델피아, 사데, 에페소, 트로이

유명상 2015. 6. 6. 22:04

빌라델피아

 

빌라델피아는 형제 사랑이란 뜻으로 교통의 요충지에 있던 도시로

황제 숭배가 심하여 초대교회 시절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도시이다.

  빌라델피아 교회.

적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충성한 교회로 주님께 칭찬을 받은 교회이다.

그러나 이렇게 칭찬 받은 교회가 있던 도시가 알라의 도시라고 이름까지 바뀐 것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비잔틴 시대 세워진 빌라델피아 교회. 지금 남아 있는 기둥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데

 

빌라델피아교회터를 순례한 후 역시 소아시아 7대 교회의 하나가 있던 사데로 갔다.

사데는 남은 것이라는 뜻으로 소아시아 최대의 아르테미스, 즉 아데미여신의 신전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있던 사데교회는 요한계시록에서 이름은 있으나 사실은 죽은 교회로 책망을 받았으며,

소수의 정결한 성도들을 본받아 생명책에 기록되라고 권면을 받았던 교회이다.

 

사데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터를 배경으로.

 





기둥의 두께가 굉장하다.

 

사데에서 발굴된 교회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사데지역을 발굴하면서 복원한 교회

 

 

에베소

 

에페소 입구에 있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묘.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이 동행한 의사이다.

 


소아시아 교회 중 대표적인 교회가 있던 에페소로 왔다.

에페소는 사도 바울이 직접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곳으로

사도 바울이 사람이 만든 신은 신이 아니다라고 외치자, 데메드리오 등이 소요를 일으켜

사도 바울과 성도들을 핍박한 곳이다.

사도 바울 이후 디모데가 사역하다 이곳에서 순교했고, 사도 요한도 에페소 교회에서 사역하였으며,

사도 요한 이후에는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가 에페소 교회에서 사역한 것으로 교회사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에페소는 교회는 복음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박해 가운데 믿음을 지켰다고 칭찬을 받기도 하였으나,

첫사랑이 식어간다는 책망도 동시에 받은 교회이다.

 

에페소 유적지 입구에 있는 익투스 표시. 박해 시절 성도들은 저 표시를 이용하여 모이고,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에페소에는 다양한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각종 신전들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아고라, 원형극장, 도서관

그리고 목욕탕과 목욕탕의 물을 이용한 수세식 화장실까지...

 

구레테스 길을 따라 서 건축되어 있는 에베소의 유적지들

 

 

 




니케 부조






 


도미티안 신전


목욕탕의 물을 이용한 수세식 화장실.

남자들만 사용이 가능했고, 용변 중에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에페소 유적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셀수스 도서관이다.

이 셀수스 도서관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두란노 서원의 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걸었을 크레티아 거리

셀수스 도서관에서 에베소 원형극장으로 가는 길이다.

바닥은 모두 대리석으로 포장이 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에베소 아고라 터


에베소의 원형극장을 배경으로.

2만 명 이상을 수요할 수 있는 원형극장으로 현재도 원형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저 곳에서도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거기에 반발하는 데메드리오 등이 소동을 벌였겠지.

그런데 원형경기장은 공명을 이용하여 현재와 같은 음향이 시설이 없어도

다중에게 의사전달이 잘 되도록 설계되었다.

 





원형극장에 있는 맹수의 우리

원형극장에서 맹수에게 순교 당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에페소의 수호신 아르티메스.

 풍요의 상징으로 많은 가슴을 가지고 있고, 성경에는 아데미 여신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만든 것이 신이 아니라고 외쳤다.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는 아르테미스 신전터.

파르테논 신전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고 한다.  

늪지대에 건축된 것으로 현재는 모두 파괴되고 기둥 하나만 남아 있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

 

에페소 유적지에 이어 인근에 있는 사도 요한 기념교회로 갔다.

사도 요한 사도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밧모섬 유배에서 돌아온 후 에페소교회에서 사역하다 죽었다.

사도 요한은 에페소에서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

그리고 밧모섬에 돌아온 후 요한계시록을 기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 입구에 있는 박해의 문





사도 요한 교회에 서 있는 네 개의 기둥.

네 개의 기둥은 사복음서를 뜻한다고 한다.

 


사도 요한의 묘. 평장묘로 사각형의 꼭지점에 4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사도 요한 교회 침례탕.

 이번에도 은진이가 들어갔다.

이동환 목사님께서 실제 침례의 모습도 보여 주셨다.

  

에개해변에 있는 아이발릭의 호텔에서.

서양문명의 시초로 인식되는 에게문명의 한 가운데 내가 서 있다는 착각을 느끼게 했다.

 

 

트로이

 

터어키에서의 마지막 순례지는 트로이 유적지였다.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곳.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꿈 속에 나타난 마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마케도니아 전도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도 바울의 흔적을 찾아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터키 순례에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아쉬움과 두려움이었다.

사도들의 피로 세운 교회까지도 폐허로 변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교회들을 어떻게 하실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주님. 이 땅의 교회들을 치유하시고, 다시 한 번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명백한 조잡한 트로이의 목마.

 


전설 속의 트로이를 역사로 끌어낸 유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