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 여행

캄보디아 씨엠립 여행(7) 이 땅을 고치소서

유명상 2019. 3. 3. 11:04

와트마이, 펍스트리, 호텔 등


와트마이는 크메르루즈에 의하여 학살된 희생자들의 유골을 모아 놓은 사찰이다.

병원을 건축하기 위해 정지작업을 하던 중 희생자들의 유골이 발견되자

기부자들의 기부에 의하여 그곳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사찰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기부자들의 명단이다.


크메르 루즈에 의하여 이유도 없이 학살된 피해자들의 유골이다.

단지 안경을 끼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된 희생자들도 있다고 하니....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캄보디아에서는 안경을 낀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학살을 주도한 자들에 대한 전범 재판은 40년이 다 된 최근에 끝났다고 한다.



잠깐 들렀던 재래시장의 모습

우리나라 70년대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았다.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지 비슷한 것 같다.


캄보디아에서는 인공 저수지를 바라이라고 한다.

씨엠립에는 동쪽과 서쪽에 바라이가 하나씩 있었으나 현재는 동쪽 바라이는 없어졌다.

서쪽 바라이는 길이 8킬로미터, 폭 2킬로미터 정도로 지금은 씨엠립의 상수원으로 사용되며

항상 더운 씨엠립 주민들의 피서지 역할도 하고 있다. 



서 바라이 주위에는 각종 열대과일들을 피서객에게 팔고 있다.

우리도 망고 등 과일을 배부르게 먹었다.


실크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실크팜에 잠시 들렀다.

기계 등은 과거 우리나라의 가내 수공업을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였지만,

노란색 누에고치가 인상적이었다.


캄보디아 민속촌의 모습

건물만 몇 개 세워져 있을 뿐 문화재를 둘러본 사람들에게는 큰 감흥이 없는 곳이었다.



캄보디아는 아침이면 신들을 위해 음식을 내어놓고 있다.

힌두교와 대승불교를 거쳐 현재 전체 국민의 대부분이 힌두교와 접목된 상좌부불교를 믿고 있는 곳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이 나라의 영혼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내가 본 십자가는 톤레샵 호수의 수상마을에 본 교회가 유일했다.

큰 역사적 아픔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캄보디아는 경제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가난한 땅이었다.

주여. 이 땅을 고쳐 주옵소서.





앙코르 와트의 비슈누 신상

캄보디아에서 힌두교는 사라졌지만 불교에 힌두교가 많이 섞여있어

힌두교 사원의 비슈누 신상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있다.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던 호텔





씨엠립의 핫 플레이스인 펍 스트리트

의외로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으로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는지 한글로 된 간판도 보였다.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촬영 기간 중 매일 갔었다는 레드 피아노를 비롯한 많은 카페들이 있었다.

그러나 카페에도 냉방시설이 되지 않았다.








짧지 않은 여행을 마치고 야간 비행기로 구경했다. 

도착 때와 마찬가지로 씨엠립 공항에서는 비행기까지 걸어가서 비행기에 탑승했다.